성경으로 본 남편과 여성
(베드로전서3장 1-6).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창세기 3장 16절은 여자는 죄를 지은 벌로 자기 남편을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여자들 즉 아내들을 어떤 존재로 표현을 하고 있을까?
여자는 남자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로 창조된 가장 귀한 존재이다.(창2;2)
아내들은 자기 남편과 함께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자다. (벧전3;7)
특히 여자는 남편의 마음을 지키고 돕기 위하여 예비된 자이다. (창3;11)
그렇다면 남편은 하나님을 제외한 아내를 위한 최적의 보호자요 양육자가 되라는 것이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몸만 큰 남자 아이와 결혼을 한다.
이런 영적인 어린애 같은 다 큰 아이들은 주로 역기능의 가정에서 성장한 남자들이다.
이들은 남편으로서의 아내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주장만 할 줄 하지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기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할 의무를 모르는 철없는 인간들이다.
이런 미성숙한 어린애를 한 가정의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가르치고
말씀으로 양육을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해야 할 사역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 가정 사역자들이 "아버지 학교"를 열어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는
사역은 정말 귀한 사역들이다. 문제가 많은 남편이 있으면 "아버지 학교"로 보내기를 권면한다.
남편이 유년기에 상처를 많이 입고 자기 보호벽이 유난히 강하거나 편집증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 그의 마음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돌같이 굳은 마음을 가진 자가된다 .(겔36;26)
그런 자의 아내는 거의 내쫓긴 것이나 다름없이 냉대를 받는 생활을 하며 그 아내는
아내로서 본연의 임무와 자기 역할을 기쁘게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성인 아이처럼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의 두터운 벽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쌓아 올린 벽은 좋은 것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지 못하게 모두 막아 버리는 역할을 한다,.
남편이 마음의 벽을 굳게 쌓으면 그 아내가 남편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나 그 벽을 두드려
보려고 할 때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그 아내는 냉대와 무시 절망감만 맛본다.
아내가 남편의 차디찬 벽을 무너뜨리고 다가갔다가 도리어 공격을 받고 실패를 하면 자신의 역할과 가치에 대하여 회의를 품기고 두려움과 모욕감과 외로움과 좌절감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런 남편과 말을 해도 피상적인 대화일 뿐이지 부부로서의 다정한 대화는 거의 단절이 되고
조금이라도 아내가 진지한 대화를 걸어오면 윽박지르거나 자신이 아내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싶으면 도리어 거칠게 폭력적으로 공격을 하거나 거북이처럼 그 자신이 만든
철갑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대화를 단절한다.
이런 마음이 완고한 성인 아이들은 자신의 악한 습관을 너무도 정당화하고 합리화 시킨다.
이런 남편은 자신이 잘못을 하고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이 너무도 당당하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된 태도로 인해 상처 받고 공격을 받는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남편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감을 전혀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충고조차 자신에게 비판과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느끼고 분노를 할 뿐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살필 줄은 전혀 모른다.
이들이 어릴 때 받은 성처로 인해 주위 가족이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도피하는
방법으로 그 현장을 피하거나 도리어 역으로 비판하거나 공격적으로 나오게 된다.
몇십년에 걸처 형성된 충동적이고 방어적인 악한 습관은 결국 자기 자신을 혼자 가두는
차디찬 감옥이 된다. 이럴 때 아내들이 선택하는 것은 주로 침묵으로 무관심해 버리거나
타인에게 남편을 원망하고 비난하거나 은밀하게 복수하는 것이다.
이럴 때 하나님이 아내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그러한 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내들이 걱정과 근심이 생겼을 때 해야 할 훈련은 그 노도질풍같은 근심과 걱정이 당신을 사로잡기 전에 얼른 그 감정을 주님에게 가지고 가서 기도로서 맡기고 그 마음을 털어내는 것이다.
결코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부터 받은 분노와 상처를 붙잡지 말고 그것을 당신의 마음에 받아들이지 말라, 분노와 절망의 늪에 빠져서는 더욱 안 된다. 그때는 한나처럼 주님 앞에 나가서 당신에게 있는 마음을 솔직히 토설하고 인정하라. 그리고 그것들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 가져다 놓으라.
주님 안에서 당신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깊이 묵상하고 모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다시 새로운 삶으로 돌아가라,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편과의 관계속에 상처 받은
마음속에 올라오는 악한 감정들이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7장 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영적으로 지혜로운 아내들은 자신 안에 올라오는 쓴 뿌리 같은 쓰디 쓴 나쁜 감정과 원망을
끌어안지 않고 십자가 아래서 슬기롭게 처리하고 내려 놓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분노와 비탄과 슬픔 억울함 열등감 절망감들은 모두 쓴 뿌리에서 올라오는 악한 감정이다.
그러한 감정을 빨리 처리하지 못하고 그냥두면 결국 마귀에게 틈을 주고 죄를 짓는 것이다.
[엡4장 26.27]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신의 마음에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다.
아무리 모욕을 당하고 화가 나도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큰 용사보다 나은자이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하나님의 용사들은 이 같은 분노의 마음을 빨리 내버리는 방법을 터득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따라 의로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을 수 있는지 알고 체험한 사람들이다.
[엡4장 23-24]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지금은 절망과 슬픔과 분노의 밤이지만 내일은 다시 의로운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을 믿으라..
저명한 내적 치유자인 폴라 센포드 여사의 간증을 들어 보면 자신의 부부 사이에 그러한 갈등이 있을 때 치료의 방법으로 자신과 남편에게 존재하는 모든 욕구와 필요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또 그러한 부부간의 갈등이 있을 때 그 근심 걱정과 분노를 주님에게로 가져가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상한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기도하여 연구하고 훈련하기를 거듭했다.
남편에 대한 실망이 올라올 때 마다 자신의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을 십자가에 못 밖고 자기 자신의 아픈 마음을 주님께서 가지고 가서 기도하면서 자신의 상처 받은 마음만 치유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억제하고 그 대신 자기 남편을 위하여 축복하고 또 축복하는 기도를 계속 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편을 축복하며 그의 마음을 열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남편에게 문제가 생길 때 도피하려는 충동을 억제시키고 남편의 마음이 어떤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어떻게 해야 남편의 마음을 풀 수 있는 지를 연구하고 노력하고 배우기를 시작했다.
남편의 무정하고 이기적이고 끝없는 분노를 다루는 방법과 그리고 남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과 주변에 중보 기도를 청하는 일들도 그들 부부의 치료의 한 과정이었다.
문제 있는 부부가 화목케 되는 이 것은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었고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침내 남편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아내에게 저지른 일들에 대하여 잘못을 인정할 정도로
그 영혼이 점점 강건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적으로 완전히 치료 받게 되었고 이제 이들 부부의 관계는 풍요롭게 발전해가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유쾌하고 사랑스런 관계로 바뀌어지며 이제는 어떤 문제가 있어도 서로
협력하며 서로를 인정하며 고요히 안식을 누릴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잠언 31장을 읽어 보면 진주보다 더 값진 현숙한 아내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신뢰하고 또한 그 아내의 부지런함으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 아내의 헌신으로 남편은 성문에서 존경을 받으며 그 아내는 살아 생전 온 힘을
다하여 자기 가족들과 남편에게 선을 행한다.
그 여인은 부지런하고 건강하고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자신감이 있고 무엇보다 지혜롭다.
아랫사람들도 슬기롭게 잘 부릴 줄 알고 그녀는 자기 가정만 잘 돌보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남들도 적극적으로 돕고 구제하는 일을 하며 가족들과 자신의 몸단장을
위하여 집안을 잘 단장을 하는 것과 옷을 입어도 맵시 있게 잘 입을 줄 안다.
그 결과 그 남편과 자식들이 일어나서 그 여인에게 감사하여 그 공을 인정을 한다.
그녀는 큰 무역 사업을 하며 무엇을 해도 두려움이 없고 매사에 허둥대지 아니하고 일을 해도
질서정연하고 말에는 조리가 있으며 태도에는 권위와 위엄을 잃지 않고 항상 온화하다.
이런 여인이 진주보다 나은 여인이며 바로 당신과 제가 본받아야 대상이다.
[잠언 31장 28-31].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정에도 부부간의 문제들이 있는가?
여기서 등장하는 현숙한 아내와 그 남편의 태도는 당신 부부의 태도들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세밀하게 살펴보시라.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항상 겸손하게
더 배우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현숙한 여인을 본받기를 바란다.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들에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부부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존경과 경외심으로 서로 대하라는 것이다.
[에베소 5장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이러한 현숙한 가정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이런 자신의 소욕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능력으로 서로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주님이
도우시면 당신들의 가정도 현숙한 여인의 가정처럼 행복하게 될 수 있음을 믿으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피차 복종하고 순종을 할 때 어떤 문제가 있어도
싸우지 않는 것고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 서로의 잘못을
서로를 위한 연민과 지혜와 감사로 바꾸어 놓으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아내와 남편은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고 보양하는 한 몸임을 명시하고 있다.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라 무조건으로 상대방을 보살피고 양육하겠다는 계약이자 선택이다.
비록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와 남편일지라도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방이
거룩하게 성화 될 수 있도록 자원하여 돕고 순종하겠다는 자신의 선택과 결단이다.
당신의 가정에게도 이런 고통의 문제가 있느냐?
방금 언급한 말씀처럼 당신을 통하여 아내와 남편을 거룩하게 만들어 구원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순종을 자원하는 남편과 아내가 되기를 부탁드린다.
성실하지 않는 남편들
아내들이 무정한 남편과 사는 것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답답한 것은 도덕관념이 전혀 없고
성실하지 못하며 진리와 담을 쌓고 영육으로 든든한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남편들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고 현재에도 그런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고 부도적한 관계를 지속을 할 때 아내가 그 남편을 믿고 그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하거나 믿음으로 그를 신뢰하는 것이 아마 불가능 할 것이다.
이때 아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이혼을 하거나 그냥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 다 쉬운 선택은 아니다. 이 둘 다 큰 고통의 대가가 따른다.
성경에는 이런 불합리한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호세아 선지자의 가정을 보면 호세아는 끝임 없이 방종한 아내를 용서하고 기다려준다.
호세아는 바람나서 떠난 아내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창녀로 팔려간 아내를 찾아가서
그 값을 주고 다시 데리고 와서 간곡한 말로 위로하고 그녀에게 포도원을 주고
소망이 없는 아골 골짜기 같은 자기 가정을 소망의 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결과 드디어 고멜이 자신의 부정함을 회개하고 "내가 내 첫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가 지금보다 나았도다." 하고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여기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뜻이 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남편의 심정으로 고멜과 호세아 가정의 비극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장 원하시는지를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영적인 남편인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을 원한 것이다.
아내를 목숨처럼 사랑해주는 남편의 마음을 아는 여자들은 결코 바람을 피우지 않듯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제대로 아는 백성들이라면 절대로 우상숭배를 하지 않을것이다.
그 말씀을 가정으로 바꾸어서 말을 한다면 가정에서 부부는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주는
부부가 가장 행복한 부부이다. 아내가 자기 남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고 남편은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조차 없는 가정은 말로만 부부지 이미 금이 간 비극적인 가정이다.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을 원하듯이 부부관계나 대인관계에도
상대방을 신뢰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
행복한 가정이나 좋은 인간 관계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가정에 보아도 아브라함 역시 초기에 아내 사라와의 관계에서
남편으로서 지혜롭지도 성숙하지도 못했고 아내를 보호하는 기사도가 아예 없었다.
그는 애굽 왕인 아비멜렉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결국 자신의 아내가 왕에게 끌려가서 강간당하는 위험에 처하도록 내 버려두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걸고 아내 사라를 지켜줄 믿음직한 남편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라는 남편의 말에 순종하였고 결국 사라를 지키고 보호하시고
빼앗긴 사라를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신 것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해결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이 여인이 아브라함의 부인임을 알게 하셨고 아베멜렉을 통하여
애굽의 다른 남자들이 사라를 범하지 못하도록 합법적으로 막아 주셨다.
그때의 일을 신약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벧전 3;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즉 이 말씀은 당신의 남편의 신앙이 덜 성숙하고 인격이 덜되고 자기중심적이고
미덥지 못한자 일지라도 하나님과 관계에서 만큼은 확실하다면 그 아내들이 담대히
사라처럼 남편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
다른 성경에서는 문제 있는 부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7: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오늘날 여자들이 자기 남편들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기대하며 때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들을 무리하게 남편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남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면 자신이 남편이나 아내를 쉽게 변화 시킬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대부분 남자와 여자는 결혼한다고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완벽하게 진실하시고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시고 변화시키신다.
하나님만이 당신의 아내와 남편의 죄를 꾸짖고 그들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아내가 아무리 의롭고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있더라도 아내의 믿음으로 인해
그 남편이 반드시 회개하고 개과천선하리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문제있는 남편과 자녀들의 상한 마음을 만지시고 변화를 시키신다.
따라서 여자들은 사라처럼 주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함으로서 우리 자신의 믿음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부부 관계에서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주님에게 물어서 주님의 가르침으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지혜를 얻고 힘과 능력을 발휘하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그리하듯이 남편을
신뢰 할 수 있는 동시에 남편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혼자 의연하게 설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말씀을 읽어보자
[눅14장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주님께서 우리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것은 끝임 없이 찾아오는 육신의 쾌락과 정욕을
내어 버리기로 결정하고 너무도 미운 상대방도 용서하고 관용하는 것을 배우라는 것이다.
우리 생애에서 큰 물결이 일어나고 거센 탁류가 마구 몰려드는 위기의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가 우리의 심령의 성전이 든든한 반석위에 세워졌는지 아니면 모래성 위에
세워졌는지 그 물결과 바람이 당신의 믿음의 집을 시험할 때며 당신 자신의
신앙의 실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축복의 때인 것이다.
당신을 버린 사람들, 상처를 준 사람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도 매순간 힘을 다해서 그 결정에 대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이때 어마어마한 기도와 인내와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의 말한 마디 사과로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용서를 다했는가 싶으면 또 불쑥 분노가 올라오고 또 미워지고 마음이 상해진다.
그럴 수로 당신의 상황이 더 악화되고 용서하는 기간도 연장이 된다.
그런 마음을 바꾸기 까지 하나님께서 이같은 미움과 분노를 선으로 바꾸어 주시리라고
지속적으로 확신할 때 까지 엄청난 믿음과 기도와 인내가 요구된다.
이때는 욥이 당한 고난의 기간처럼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려운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끝임 없이 용서하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에게 순종할 때 그분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당신의
삶에서 조금씩 신실하게 그 모욕과 수난의 재를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꾸고 계심을 믿으라.
지금 당신이 당하고 있는 현재의 고통보다 그분이 당신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광의
은혜가 한없이 크다는 것이며 그것을 안다면 용서와 긴 시산의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때 당신의 상처와 고통이 가장 아름다운 진주로 바뀌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어려운 고통의 시기를 지나는 아내와 남편들이여 힘을 내시기를 바란다.
당신이 그 문제를 가지고 신음하는 이 순간에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일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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