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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철학/기독교

설교 : 천국가는 길

by 티스토리 사랑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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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국가는 길


어느 기자가 테레사 수녀를 인터뷰했습니다. “수녀님은 많은 시간 기도를 하시는데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하시나요?” 그랬더니 테레사 수녀의 대답은 “저는 말하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그랬더니 수녀의 대답은 “하나님도 나의 기도를 들으려고만 하세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식은 말하려고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고 한다’ 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릴 때 기도한 기도의 제목은 잘 듣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들어야 바른 판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자 보다는 듣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은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설교의 내용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을 통해서 5월 3째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천국길을 인도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3절.

 

여행을 가면 가이드가 있습니다.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기분좋은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되느냐 불쾌한 여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길 안내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여행도 길안내자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으로 가는 영적인 세계에도 길안내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길 안내자로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본 유튜브 중에 서울의대 정신과교수가 만든 유튜브가 있습니다. 이분의 얘기는 과연 죽음 후의 세계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죽음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일례로 외국의 어느 학자가 조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누구를 조사하였는가 하면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다가 떨어진 사람들을 조사한 것입니다. 높은 데서 순간적으로 떨어졌는데 산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당신은 떨어지는 순간 무엇을 보았는가를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동일한 대답은 높은 데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고 합니다. 수십년동안의 기억이 단 몇초사이에 떠오를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들겠지만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리고 또 말하는 것은 사람이 임종을 할 때는 길안내자가 온다는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보지만 임종을 앞둔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오느냐에 따라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공포에 질리기도 하고 평안하게 눈을 감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장로님이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걸 알면 서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셨는데 임종을 앞두고 죽지 않을려고 이를 바득바득 갈아서 이가 상하는 사람도 보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임종을 맞이한 사람앞에 원수가 온 것입니다. 지옥의 사자가 왔든지 철천지 원수가 온 것입니다. 그러면 안갈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박완서라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한국 문학에 크게 기여한 소설가가 있습니다. 이분이 쓴글에 보면 자신의 어머니가 90평생을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호뱅아 니가 여기 웬일이야?” 하고 일어나시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에게는 안보이는데 어머니의 눈에는 호뱅이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호뱅이가 누구냐면 이 분 집안이 북한에 있을 때 집안 머슴이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듬직하게 일을 잘하고 신실했는지 어머니가 많이 믿고 의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죽음 직전에 본 사람이 호뱅이였다는 것입니다. 박완서의 말은 어머니는 10년 전부터 다리를 다치셔서 잘 걷지 못했고 호뱅이는 예전에 지게를 잘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의 말은 다리 아픈 어머니를 호뱅이가 지게로 모셔 갈려고 왔나보다 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우리에게 누가 오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거처를 예비하러 가셨고 다시 와서 나 있는 것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는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안됩니다. 사탄 마귀가 오면 안됩니다. 꼭 예수님이 오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유대 문서에 보면 돌아가신 분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사가 미가엘 천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서에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신을 두고서 마귀와 다투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누가 오느냐가 중요합니다. 부디 우리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의 영접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6절.

 

예수님이 천국행 티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문산에서 서울을 올라올 때는 기차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면 기차표가 있습니다. 역에서 기차표를 사서 올라타면 한참 가다가 역무원이 기차표 검사를 합니다. 그러면 기차표를 내밀면 역무원이 구멍을 뚫는 집게 같은 걸 가지고 구멍을 뚫어서 줍니다. 검사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서울까지 무사히 올 수 있습니다. 

우리도 천국에 가는 데는 천국행 티켓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는 믿음이 있으면 주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천국행 티켓입니다. 

 

중세시대 때 이야기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짓는데 돈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로마 교황청에서 생각해 낸 것이 면죄부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사이에 연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연옥은 죽은 사람들이 잠시 대기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천국갈 사람, 지옥갈 사람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이땅에 있는 가족들이 면죄부를 사면 지옥갈 사람이 천국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연옥에서 고생하는 사람도 그 기간을 단축하여 천국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면죄부를 팔자 면죄부는 날개 돋힌 듯이 팔려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교황청에는 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가 돈과 결탁을 하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중세교회가 부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아이러니한게 이런 것들이 오늘 날에도 반복이 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유행한 조상죄헌금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지은 죄가 있는데 그것때문에 내 인생이 꼬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헌금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조상죄헌금입니다. 

 

제가 부목사 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는데 강사 목사님이 조상죄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조상죄 헌금을 내라고 하더라구요. 신학적인 근거도 없고 긴가민가 하면서도 부목사가 무슨 힘이 있어요? 그냥 하라는 대로 순종했죠. 내면서도 이게 맞는건가? 틀린건가? 그러면서 낸 적이 있습니다. 

조상죄 헌금을 내라는 이유는 조상이 지은 죄가 나에게 업보가 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사람들이 들으면 일단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허물이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걸 알기때문에 조상들도 허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이 막합니다. 그러면 결론이 나옵니다. 조상죄 문제가 있는거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연약한 심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조상죄 얘기를 하면 이렇게 얘기해 줘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다 씻음 받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모든 죄를 완벽하게 씻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죄 얘기하고 업보 얘기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 받았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속죄에 대한 믿음이 약하면 이런 것이 먹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완전한 속죄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얘기 하는 것이 이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완전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가 필요하고 여호와의 증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나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속죄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학생이 교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사람이 죽는 준비를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거야 몇 분이면 되지”하고 교수가 대답했습니다. “천당 가는 준비를 하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그것도 몇 분이면 되네. 예수님 곁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는 잠깐 예수 믿고도 구원받지 않았나?” 그러자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괜찮겠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러면 저는 즐기다가 마지막에 가서 예수 믿으렵니다.” 그리고는 자리를 뜨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학생을 불러 앉히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한 마디 묻겠네. 자네는 자네가 언제 죽을지 알고 있나?”. “모르지요” . “그게 문제라니까. 우리가 언제 갈지 모르는게 문제 일세”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믿음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천국행 티켓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심을 굳게 믿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

 

제자인 빌립이 물었습니다.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랬더니 예수님의 대답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나를 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1절에 말씀하기를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성도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는 말씀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것은 뭐냐면 과거에 대한 생각이 자꾸 난다는 것입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제는 미래의 시간보다는 과거의 시간이 기니까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생각 중에서도 잘한 생각은 별로 안나요. 잘못들과 허물들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 다 같은 길을 걸어가니까요.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얻는 지혜가 뭔가 하면은 우리가 남은 시간에는 허물을 쌓아 놓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회개할 일이 많이 생기고요.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평화롭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그동안 고마웠다. 그동안 미안했다. 이 말을 제일 많이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원망할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간은 불평할 시간도 아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다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때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부모를 닮듯이 성도는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숭아 나무는 복숭아 열매를 대추나무는 대추열매가 열립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자녀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넓은 잔디밭의 풀을 손수 다 깎느라고 힘들었던 한 사람이 어느날 성능이 좋은 풀 베는 기계를 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기계를 가져온 사람은 그에게 기계를 어떻게 조작하는지와 기름을 채워 놓았음을 일러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기계를 가져온 사람이 떠나자마자 곧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를 조작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엔진이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때 이웃 사람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의 일을 이야기해 주자 그 이웃 사람은 기계를 살펴본 후 시동키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로 부르릉하고 소리를 내면서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시동 버튼도 누르지 않은 채 기계를 작동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던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님은 그 기계의 시동 버튼과 같습니다. 기계는 시동 버튼을 눌러야 작동이 되듯이 우리들 역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게 될 때 우리는 이 세상과 마귀를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것이 열매를 맺는 신앙입니다. 주님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무익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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