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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주일예배대표기도문

구원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의 동산이 가는 곳마다 싱그
러운 꽃들로 아름다움을 더해 가는 5월 봄 날의 첫째 주
일을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필요를 날마다 새롭게 공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채워주시는 은혜를 잊고늘 허덕
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봅니다.
주님이 우리를 궁핍한데 처하지 않도록 늘 보살펴 주셨지만 
우리의 눈이 욕심에 멀어 식물을 구하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하여 전전긍긍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품위 없이 살
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오래 참으시는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당당하게 
하시기를 원하오니 우리의 필요에 전전 긍긍하지 않도록 축복
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주님! 이 귀한 날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도 마음
에 근심과 고통이 있어서 주님께 감사드리지 못하는 심령들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저들의 상한 심령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안정을 되찾게 하시고 주님께 감사하
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를 보내주옵소
서. 우리가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도록 우리
의 마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자비하신 주님! 경제가 어려워지면 근심이 없는 가정이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불안해하며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저희에게 더욱 큰 믿음을 허락하시 기를 원합니
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이끌려 다니는 모습이 아니라 더욱 
힘차게 현실을 이겨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사랑과 위로의 하나님!
지금 이 나라에서는 북한의 공산정권을 이끄는 사람들이 전쟁
도 불사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근심에 잠겨 있습니다. 어리석은 그들의 영혼을 밝게
하여서 남북한이 한 마음으로 뭉치고 통일로 만세를 부르며 기
쁘게 살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또한 전 세계가 지진과 홍수와 폭설로 인하여 많은 인명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위로하시고, 남은 세상을 살아
가는데, 힘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이 땅 위에 친히 세우신 교회를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교회의 각 기관 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귀한 기관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각 기관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
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사랑을 드러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사랑과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주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주님의 종님에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주시옵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으로 하여금 온 교회 
성도들의 본이 되게 하시며, 평안으로 도우사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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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폴리리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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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예배대표기도문 (구역예배후 식사기도문)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보호 안에 각자의 삶을 살다가 

이렇게 다시금 만나 주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나다. 

우리 구역 식구들이 모이기에 힘쓰며 기도에 힘쓰고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주님께 시선을 두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연약하여, 

주님이 이끌어주시시 않으면 넘어집니다. 

주님의 능력의 오른팔로 붙들어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역 식구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허락하사,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세상의 일로 어려움 당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시고, 

우리가 환란가운데 거한다면, 

그 환란 속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을 바라보며 인내함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예배드리는 이 가정에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셔서 

평안한 가정 되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는 믿음의 가정 되게 하옵소서. 

이 가정에 물질의 축복도 허락하여 주셔서 물질로 인하여 어려움이 당하는 일 없도록 채워주시고,

가정원들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구역 식구들의 기도제목을을 아시는 주님께서, 

각 가정의 계획하고 있는 모든일들이 주 안에서 형통케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식사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구역예배를 드리고 식사와 친교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음식을 먹고 오늘도 주님의 품안에서 승리하는 우리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하는 손길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함께 모인 우리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음으로 인하여 

육신이 강건하여 지고 우리 삶이 더욱 풍성할 수 있게 하시며, 

육신의 양식 뿐 아니라, 영의 양식도 게을리 하지 않고 먹게 하옵소서. 

이 식탁위에 복 내려 주시기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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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으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자합니다.

이땅에서의 죽은은 
누에고추 안에 있던 벌레가 나비가 되어 훨훨 날라가듯
누에코추안에 있던 매미가 밖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듯 
우리 교인은 죽으면 다시말해 이땅에서 탈을 벋으면 ,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 집니다.
나비와 매미 보다 더 즐거워 춤추며 노래할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죽음은 너무 행복한 삶의 시작입니다.
이땅에서 생일이 유한하만 끝이이있지만 
죽은 순간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라 영원한 생일입니다.

죽음 이후에 기독교인은 어떻게됩니까?
by 일레인 모스
죽음 이후에 기독교인은 어떻게됩니까?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오직 영원한 삶의 시작일뿐입니다.

누에 고치를 애도하지 말라 나비가 날아 갔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죽을 때의 감정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죽음에서 우리의 상실을 슬프게하는 동안, 우리는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에 들어 왔음을 기뻐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애도는 희망과 기쁨과 섞여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죽었을 때 일어나는 일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은 천국으로 운반되어 그리스도와 함께있게됩니다.


사도 바울 은 고린도 후서 5 장 1 ~ 8 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이이 세상의 천막이 내려 졌을 때 (즉, 우리가이 세상의 몸에서 죽을 때) 우리는 천국에 집을 지니고 인간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영원한 몸을 갖게된다는 것을 압니다 . 우리는 현재의 몸에 지치고 성장하며 새로운 옷처럼 천상의 몸을 길게 입을 것입니다 ... 우리는 새로운 몸을 입어서 이러한 죽어가는 몸을 삶으로 삼켜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이 몸에서 살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집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보고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오히려이 세속적 인 몸에서 멀어 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집에있게 될 것입니다. (NLT)
데살로니가 전서 4 장 13 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말하면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죽은 신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희망이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NLT).

인생을 삼켜 버렸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와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인이 죽었을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희망으로 슬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천국에서 "생명으로 삼켜졌다"는 것을 아는 것을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전도사이자 드와이트 엘 무디 (Dwight L. Moody) 목사 (1837 ~ 1899)는 한 때 자신의 회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당신은 이스트 노스 필드의 DL Moody가 죽었다고 신문에서 읽을 것입니다. 그 말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그는 하나님을 맞이합니다. 사도 행전 7 장에서 스데반 이 죽임을 당기기 직전에 그는 하늘을 우중 쳐다 보면서 아버지 하느님 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를 보았습니다. "보아라. 하늘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권리를 존중히 여기는 것을 보았다. 손!" (사도 행전 7 : 55 ~ 56, NLT)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쁨
당신이 신자라면, 당신의 마지막 날이 영원히 당신의 생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하늘에 기뻐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기쁨이 있습니다"(누가 복음 15:10, NLT).

만일 천국이 당신의 회심을 기뻐한다면, 당신의 대관식을 얼마나 더 축하 할 것입니까?

주님 보시기에 소중한 것은 그의 신실한 종들의 죽음입니다. (시편 116 : 15, NIV )
스바냐 3:17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구원자 마이티 워리어가 너와 함께있다. 그는 당신을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그의 사랑으로 그는 더 이상 너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지만, 노래로 너를 기뻐할 것이다. (NIV)
우리를 큰 기쁨으로 여기며, 노래로 우리를 기쁘시게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지상에서 우리의 종족을 완성 할 때 결승점을 가로 질러 우리를 기쁘게 해드릴 것입니다.

그분의 천사들 과 우리가 알고있는 다른 신자들도 축하 행사에 참여할 것입니다.

땅에서는 친구와 가족이 우리 존재의 상실을 슬퍼하며 천국에는 큰 기쁨이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 교회의 파슨 (Charles Kingsley, 1819 ~ 1875)은 "당신이 가고있는 흑암이 아니라 하나님이 빛이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 거기에있다. "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성경은 우리에게 무관심하고 경박 한 하나님의 그림을주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방탕 한 아들 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 아이를 품기 위해 달려가는 동정심 많은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집에 돌아 왔음을 기뻐했습니다 (누가 복음 15 : 11-32).

"... 그는 단순히 우리의 친구, 우리의 아버지, 즉 우리의 친구,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무한하고 사랑에 완벽한 하나님입니다 ... 그는 인간의 부드러움이 남편이나 아내를 상상할 수있는 모든 것, 인간의 마음을 넘어 평범하게 아버지 나 어머니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 - 스코틀랜드 장관 George MacDonald (1824-1905)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유대가 영원 토록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단절시킬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악마도 오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나 내일에 대한 걱정은 지옥의 힘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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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또는 아래에 하늘에 아무런 권능도 없습니다. 실제로 모든 피조물에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시 된 하나님의 사랑 에서 우리를 분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로마서 8 : 38-39, NLT)
태양이 우리를 지구상에 놓으면 태양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일어날 것입니다.

죽음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스코틀랜드 작가 Walter Scott 경 (1771 ~ 1832)은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옳았습니다.

"죽음 - 마지막 수면? 아니, 그것은 마지막 각성이다."

"힘없는 죽음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건강을 제거하기보다는 영원한 재물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나쁜 건강 대신 죽음은 생명 나무에 '열방의 치유'(계시 22 : 2)의 권리를 주며, 죽음은 일시적으로 우리의 친구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있지만 그 땅으로 우리를 소개하기 만합니다. 작별 인사는 없다. " - Erwin W. Lutzer 박사

"그것에 따라 달라지면, 당신의 죽어가는 시간이 당신이 알고있는 최고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지막 순간이 당신의 가장 부유 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출생의 날보다 나은 것이 당신의 죽음의 날이 될 것입니다." - 챨스 스펄전.

마지막 전투 에서 CS 루이스는 천국에 대한이 묘사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있어서 그것은 진짜 이야기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은 오직 표지와 제목 페이지 였을 뿐이다 : 이제 마침내 그들은 지상에 아무도없는 대담의 제 1 장을 시작했다. 영원히 계속됩니다. 모든 장이 이전보다 낫습니다. "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은 모험의 끝이 아니라 꿈과 모험이 줄어든 세계에서 꿈과 모험이 영원히 펼쳐지는 세계로의 출입구입니다." - 랜디 알 코른, 천국 .

"영원의 모든 시점에서 우리는 '이것은 단지 시작일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익명

더 이상의 죽음, 슬픔, 울음 또는 고통
아마도 신자들이 하늘에서 기대하는 가장 흥미로운 약속 중 하나는 요한 계시록 21 장 3 ~ 4 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나는 보좌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보아라, 하느님의 집은 이제 그의 백성 가운데있다. 그는 그와 함께 살 것이며,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자신도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그는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죽음이나 슬픔이나 우는 것이나 고통이 없어 질 것입니다.이 모든 것들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 (N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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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부활절 주일예배 대표기도문 

할렐루야!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의 죄를 인하여 지신 십자가의 죽음에

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참된 소망을 주시고, 교회를 굳게 세우셨음에

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여전히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여 널리 증거하지 못했던 의심

많은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 !

주님이 사랑하시고 친히 세우신 교회도 부활의 소망으로 넘쳐나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교회를 찾는 자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

옵소서.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 앞에 드리는 이 예배에 주님이 함

께 하실 줄 믿습니다. 또한 저희로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게 하심으로 저희가 하

나님의 영적 군사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기쁨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

저희를 위하여 단 위에 세워주신 목사님 위에 날마다 새로운 힘으로 축복하시고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하심으로 저희를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실 때에도, 저희를

위하여 심방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도 주님의 허락하신 기쁨이 충만

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돕는 손길들을 기억하사 축복하시고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맡기오니

저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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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31  고난 주일예배대표기도문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오묘하신 창조와 계절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세계를 인하여 찬양 합니다. 세상의 푸르름과 같이 저희들의 신앙도 새로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고난으로 저희가 새 생명을 얻었나이다. 주님께서 고난의 쓴잔을 받지 않으셨더라 면 저희들은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면서 마귀의 자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대신 주님이 질고를 지시고 징벌을 받으시고 찔림과 상함을 받으셨기에, 저희 가 나음을 입었고 죄사함 받고 구원을 소유한 축복된 자녀로 살게 되었음을 믿나이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그 위대하신 사랑에 늘 감격하며 주님을 사모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 ! 

저희 속에 있는 죄악의 쓴 뿌리들을 제거시켜 주시고,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향유를 부은 마리아처럼, 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입술로 다른 이를 정죄하지 않게 도와주시고 마음으로 이웃을 미워하지 아니하도록 주님께서 친히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저희의 입술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사로잡히게 하시고, 저희가 무릎으로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를 언제나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받으셨던 고난의 쓴잔을 이제 저희가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다른 이들의 가슴에도 주님 의 사랑을 심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핏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축복하시어 외식하는 교회가 되지 말게 하시고, 진정으로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죄악의 사슬을 풀어 생명과 자유를 주신 주님을 함게 찬양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배드리는 동안 평화와 구원의 왕이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강론하시는 목사님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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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폴리리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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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충성된 사명자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 성구 ]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 내용 ]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있어 주님 오실 날에 주어질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늘나라의 큰 상급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상급만을 바라며 충성하는 착하고 부지런한 종에게 이 땅에서의 위로도 허락해 주십니다. 그것은 물질의 축복일 수도 있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커다란 성과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자녀들이 잘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위로이자 축복은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기를 지으사 사명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 그분과 친교를 누리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만족을 향유하며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담대히 살아가던 엘리야를 여러분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수많은 우상 숭배자들과 싸웠고, 그의 기도 한마디는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도 같아서 모두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욕보이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 그렇게 목숨을 다해 충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엘리야를 ‘나중에 하늘 상급이 있으니 조금만 참거라’하고 그냥 방치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분명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셨고, 언제든지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항상 친근히 응답하셨고, 피곤한 사명의 길에 지쳐 쓰러져 있을 때는 시원한 물과 떡으로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동행해 주신 흔적들입니다.

아무리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라 할지라도,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의 자리로 부르신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아직도 남아있기에 신자에게는 그 부르심을 따라 살아갈 자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나그네 된 사명의 길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새로운 자원, ‘하나님과 동행함’이라는 삶의 자원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것이 착하고 충성된 사명자의 진정한 표지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 묵상 ]

여러분의 인생을 회상해 보며,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던 삶의 흔적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동행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하지만 아직도 그런 동행의 흔적들을 찾을 수 없다면, 첫째,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는데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은 것은 아닌지, 둘째,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실 수 없을 정도로 불충성한 삶을 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사명자의 참된 표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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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폴리리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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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수고한 종들에게 당신의 공의에 합당하게 보상해 주십니다.​

[ 성구 ]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줄지니라”(신15:13-14)

[ 내용 ]

이스라엘에도 노예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예 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제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이 신분이 계속해서 세습 되고,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게 자유를 억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노예들은 노예가 된 계기부터가 세습이나 민족 차별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노예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노예제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안식년이 있어, 6년이 지나 7년째에는 자신이 원하면 얼마든지 노예의 신분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육년 동안 종살이를 한 노예는 속함을 받을 때, 주인에게 양과 포도주와 곡식을 후히 받아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는 것도 감격적인 일인데 주인에게 풍성한 수확을 얻어 나오는 모습 속에서 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종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종들은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노예가 되어 6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뎠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진정으로 충성된 종들은 주인의 재산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돌보았습니다. 이 종들의 충성을 통로로 하나님께서는 그 주인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기업을 얻어 자기 소유의 농사도 짓고, 번듯한 집도 있어 주인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도 애굽에서는 노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신분에서 속하사 지금처럼 사람답게 살도록 하신 것이지 별 볼일 없는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이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를 해방시켜주는 안식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러한 은혜를 되새기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율법을 통해 어떤 헌신이던지 주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따라 헌신한 종에게 반드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마음 중심으로 충실히 주인과 종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백성들은 그저 율법을 따라 종으로서의 의무, 주인으로서의 의무를 따른 것뿐인데도 풍성한 보상을 약속해 주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힘입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충실히 수고한다면 더 풍성히 갚아주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어깨 위에 메어 있던 죄의 멍에를 내려 주사 쉽고 가벼운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게 하셨습니다. 그 멍에를 즐거이 지며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주께서 베푸신 긍휼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분은 당신의 공의를 따라 분명히 우리에게 후히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약속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묵상 ]

주님을 위하여 수고로운 삶을 살아가더라도, 영혼은 핍절하고, 육체는 피곤하며, 모든 의욕을 상실하는 것 같은 위기를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자유와 축복의 약속을 믿으며 안식년을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노예들처럼,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에 기대어 선다면 위기의 때에, 일어날 힘을 얻을 것입니다.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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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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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구 ]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 내용 ]

어느 날 어떤 목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설교자는 불꽃처럼 살아야한다』를 읽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듯한 경험을 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내가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인가?’ 하는 회의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라며, 이제는 매일 설교단에 서는 것조차 괴롭기에 당장 목사를 그만두고 싶노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쓸 때 이 목사님과 같은 반응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집필하였기에 그 목사님께 “그 책을 제대로 읽으셨군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회의가 목사님으로 하여금 함부로 설교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게 할 만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목사님의 부족함을 보여주셨다면, 우선은 그것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만일 그 목사님께서 교회를 그만 두고 일정 기간 설교를 쉬면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잘 갖춰진 후에 다시 설교를 하면 더 훌륭한 설교를 하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설교자의 모습과는 너무도 먼 자신이 한심해 보이더라도 설교 사역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 고뇌와 아픔으로 감히 그 일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늘 깨달으며 겸손히 설교하다보면, 그 과정을 통해서 부족한 설교자는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며, 어느새 그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의 설교자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단번에 위대하고 큰일을 맡게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은 특히 젊은 나이에 출세한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들의 삶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단숨에 운이 좋아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이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에서 최고를 목표로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사명의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만 바라보고 그 일이 아니면 다 하찮은 일들로 여겨 충성하지 않는 것은 출세한 사람들의 드러나는 모습만을 보고 환상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 일이 무엇입니까? 가장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깨달으십시오. 작은 일을 위해서 자기의 귀한 것들을 희생하고, 가장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자신이 완수할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고 믿는 그 마음으로 노심초사하며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큰 것을 맡겨 주십니다.





[ 묵상 ]

하나님께 받은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까? 그런 사명이 있어 인생의 목표의식을 갖고 현실에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면 그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계속 그런 삶을 지속하는 것이 그에게 유익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없어 불안해하거나, 있어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더 큰일, 더 근사한 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일들에 충성을 다 하십시오. 그렇게 작은 일에 충성한 자는 위대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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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존재하는가?

(계21:5~8) 어느 극장에 코메디(comedy)를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만 화재가 났습니다.

그때 코메디언(comedian)이 나와서 침착하게 알리기를,

"여러분, 이 극장에서 지금 화재가 발생했으니 빨리 질서있게 나가 주십시요"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면서 참 잘 웃긴 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자 코메디안이 다시 나와서, "아니 여러분, 정말 이 극장에 불이 났으니 빨리 나가셔야 합니다." 하고 심각하게 말을 해도 여전히 웃기는 말로만 듣고 좋아하다가 많은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가장 심각하게 들어야 할 설교가 지옥에 관한 설교인데, "지옥"하면 웃기는 말이나 농담으로 들으려고 하는 세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설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목사는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고 감칠맛 나는 설교만 할 수 는 없습니다.

의사는 환자가 싫어해도 주사를 놓아야 할 때는 놓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해도 칼로 째야 할 때는 째고 수술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목사도 듣기 좋은 설교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인기가 좋고 흥미가 없어도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 니다. 딕슨 박사(Dr.A.C.Dixon)가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강단에서 지옥에 관한 설교를 더 많이 했더라면 우리 사회에서 지옥과 같은 현실이 더 적어졌을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도덕적 질병이 잘로 심각해 지는 것은 지옥의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지옥에 관한 설교를 분명히 해주었더라면, 성도들이 더 많이 전도했을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과 교인들이 지옥의 존재를 분명히 믿고,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멸망받아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면, "교인 숫자만 많으면 무엇하느냐?"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결코 없으리라고 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기독교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확신을 갖고 전해야 됩니다.

1.지옥은 존재하는가?

사랑의 하나님의 어떻게 사람을 그 고통스러운 지옥에 보낼 수가 있느냐고 흔히들 말합니다. 지옥은 애초에 사람을 위해 예비된 곳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천사장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마귀들을 위해서 예비된 곳인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마귀를 쫓아가다가 함께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양있는 여자가 목사님께, "나는 지옥의 사상 같은 것은 싫어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그 말씀을 듣고, "옳습니다. 사람들이 형무소를 싫어하고 전기의자나 교수형 같은 사형을 싫어하지만, 어쩔수 없이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최후의 심판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씀하신대로, 사람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임과 같이 죽은 후에 심판이 있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름주고, 김 매고, 비료줘서 농사짓고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가을에 반드시 타작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때가 있는 것과 같이, 최후에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셔서 지옥의 형벌을 주시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불란서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100년 후에는 성경이 다 없어진다고 호언장담하며 무신론의 책자를 많이 출판했는데, 도리어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집은 성경을 보급하는 성서공회가 되어 성경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볼테르는 죽어갈 때,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였구나! 의사여, 나를 6개월마 더 살게해 주십시요. 그리하면 내 보물의 절반을 주겠고"하고 말했습니 다. 그때 의사는, "당신은 6주간도 못 살겠소"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병중에서 죽음에 임박하자 극도로 고민하여 흉하게 떨어서, 돌보던 의사가 정신을 못차렸다고 합니다. 그는 최후에, "나는 지옥에 가노라"고 스스로 말하며 죽었습니다. 프랜시스 뉴톤(Francis New- ton)이라는 무신론자는 임종시에, "나는 영원히 정죄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아! 지옥과 저주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내가 받았노라"고 말하며 절명했습니다. 토마스 스코트경(Sir Thomas Scott)은 죽을 때에 말하기를, "나는 이때 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는 줄 알았노라! 나는 전능자(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하여 멸망으로 들어가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페리콜드(Perigold)라는 무신론자는 임종시에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나는 영원한 정죄 받은 자의 고통을 받으면서, "나는 영원한 정 죄 받은 자의 고통을 받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상의 예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거짓없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여러차례 강조해서 지옥의 실재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말씀보다 지옥에 대한 말씀이 더 많습니다. 성경에 한두번 말 씀하셨어도 반드시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많이 강조하신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지옥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환란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여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7-9)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도 지옥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옥이 없다고 말해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을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법을 어긴 자들을 위하여 감옥과 사형과 형벌이 있음과 같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들을 위해서 형벌과 지옥이 있다는 것은 옳고 당연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지옥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뒤 5분도 못되어 그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2.지옥은 어떤 곳인가? 어떤 사람은 지옥은 한낱 묘사요, 그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인간의 말로 표현한 것보다 못지 않게 고통스러운 곳임을 명심해야 됩니다. 실제는 그림이나 묘사보다 뜨겁습니다. 지옥은 어떤 말의 표현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뜨거운 곳입니다. 지옥에서 고 통당하는 자의 기억이 더 뜨겁게 할것입니다. 강도는 지옥에서 그가 죽인 희생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투전꾼은 자기가 속여먹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한 사람은 믿을 수 있었던 기회를 기억하고 더 괴로워 할 것입니다. 죄는 불의 뜨거움을 더할 것입 니다. 야심 또한 불의 뜨거움을 더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1)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으며, 벌레 한마리도 죽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마5:22계20:10,14,15218,막9:48,사66:24).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슬피 울 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마25:30). 설혹 육신적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신적 고통은 육신의 고통 못지 않게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길레 정신적 고통으로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음부에 떨어진 부자는 너무너무 목이 타고 고통스러워서, 자기 집에서 얻어먹던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 한방울만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사정했으나, 그나마도 허락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어차피 이 고통스러운 곳에 왔지만 집에 남아있는 다섯 형제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이곳에 오지 않도록 증거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얼마나 뜨겁고 목이타고 고통스럽길래 그랬겠습니까? (2)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지나간 주간에 부흥회 인도하러간 교회의 목사님이, "피곤 한데 사우나 목욕이나 가서 땀을 좀내자"고 해서 같이 갔다가 말 한마디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뜨거운 도크에 들어가서 땀을 내다가 너무너무 뜨거워서 참다 못해 뛰어나가면서, "예이, 여기서는 참다 못 참으면 뛰쳐 나갈수나 있지, 지옥에 한번 들어가면 아무리 뜨거 원도 나갈수도 없으니..... 그것도 영원히"라고 하는 말에 큰 은혜를 받고, 그 고통스러운 곳에 안가도록 지옥에 대한 설교를 또 한번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는 죽음으로 가능하지만, 지옥에서는 출구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세상이 괴롭 다고 자살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후라이판이 뜨겁다고 영원한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Sanfrancisco)의 금문교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한가운데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섬에 감옥이 있습니다. 왜 그곳에 감옥을 지었느냐 하면, 종신형을 받은 사람 들이 탈출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곳에 지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탈출한다고 해도 물살이 세서 헤엄을 못치고, 헤엄을 쳐도 물이 차서 심장마비가 걸리거나, 아니면 헤엄쳐 나오다가 상어밥이 되기 때문에 탈출한 생각을 못한답니다. 그래도 그 감옥 창설이래 한 사람인가가 탈출해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도망칠 수 있는 문도, 길도 영원히 없습니다. (3)끝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젠가는 속박의 생활이 끝나리라는 소망을 가졌고, 후에 실제로 모세가 나타나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감옥에 힌 사람도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되리라는 소망을 가지며, 병원의 병자도 회복될 희망을 가지고, 또 회복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은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어떤이는 " 이 짧은 생애 동안에 지은 죄로 영원한 형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말하지만, 그러나 형벌 은 죄의 성질에 따라서 부과하는 것이지, 그 죄를 범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어떤 강도는 삼초동안에 살인하고, 어떤 강도는 세시간 걸려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시간에 따라 죄와 형벌이 작거나 커지지 않습니다. 모든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입니다. 태평양의 바닷물을 참새 한 마리가 입으로 한모금씩 옮겨 대서양을 채운다고 합시다. 태평양의 물이 다 마르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영원에 비하면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지옥에서 영원히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4)모든 종류의 사람이 섞여서 지냅니다. 지옥에는 모든 계급, 모든 종족, 모든 피부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저급한 인간을 상대하지 않던 사람도 지옥에서는 최하급 저질의 인간과 함께 지내며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지옥사회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의 술객들과 우상숭배 들과 모든 거짓말하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러분, 혹시 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믿지 않는 자"도 극악한 죄인들과 함께 불못에 던지운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크게 보이는 죄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산 사람은, 세상적인 표준에서 훌륭해 보여도 지옥에 참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챤 아내를 가진 사람도, 좋은 크리스챤 부모를 가진 사람도,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배척하고 진심으로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모르고, 자기의 선행과 공적을 의존했던 사람은 다 지옥에 참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고 영접하지 않은채 죽으면 오늘의 설교가 마지막 초청의 기회가 될른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받아 한 사람도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 천국이요, 안 믿으면 멸망이요, 지옥입니다. 일찌기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이 크게 들어쓰신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믿음으로 지옥불을 바라보며, 멸망해가는 영혼을 하나라도 더 구원하려고 불타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믿고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천구과 지옥에 대한 확신을 주신 것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신앙 때문에 우리 교회가 끊임없이 부흥되고, 없는 가운데서 세 계적인 성전을 건축하게 되고, 국내 외에 쉴 새 없이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지옥이 없다면 반드시 예수 믿으라고 할 필요도 없고 목사노릇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을 속히 속히 구원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출처:금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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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폴리리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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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성경이란 무엇인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Ⅰ. 본과의 요점
 
성경론은 ‘기독교 핵심진리 20가지’에서 처음으로 가르칩니다. 성경론은 모든 교리의 처음, 서론에 둡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우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이 성경을 기초로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 형태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 : 예수님의 인격과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서 법령으로 수신자들에게 주셨던 말씀, 인간의 입술로 주셨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은 기록으로 남겨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성경으로 있게 하셨습니다. 본 단원에서 배우고자 하는 초점은 성문화 된 형태의 말씀(성경)입니다.


Ⅱ. 성경의 4가지 특성

1. 성경의 권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신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성경을 믿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믿는 것과 동일합니다. 성경의 내용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고, 성경의 어느 부분을 불신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이 결코 다른 책과 같지 않고, 그들의 가슴을 향해 말하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는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그들의 위대한 목자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들을 진실로 그들의 주님이 주신 말씀으로 확신합니다. 성경은 그런 차원에서 신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그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2. 성경의 명확성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씌어졌습니다. 성경을 성경학자들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이해 할 수 없는가? 그런 질문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추어 깨닫게 하나이다.”(시119:130)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잘 되고, 명확해서 건전한 이해력이 부족해도 말씀을 통해서 지혜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되기 때문에 성경의 정확한 이해는 어떤 사람의 지적인 능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영적인 상태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모자람 때문에 성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인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3. 성경의 필요성


신자가 되고, 신자로 살고, 신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성경에 분명하게 제시 되었습니다. 어떤 목적에서 성경이 필요한가, 성경 없이 하나님을 얼마나 알 수 있는가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의 필요성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우리의 죄를 용서 받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거나 다른 이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듣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10:17)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성경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사도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성경으로 시작하고, 성경을 통해서 삶이 풍성해집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신체적인 생명이 물리적인 음식 속에 있는 양분으로 매일 유지되듯이 영적인 생명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양분으로 매일 유지 됩니다. 규칙적인 성경 읽기를 소홀히 하면 영혼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또한 깨달은 말씀과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그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입증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하나님은 일반적으로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고 했습니다. 악한 이들도 하나님에 대해 알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과 양심 속에 하나님의 도덕법에 대해 어렴풋한 이해가 있습니다.(롬1:32) 하나님의 존재, 성품, 도덕법에 대한 이런 일반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사역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심어 주신 내적인 의식을 통해 비로소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달리 특별계시는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에게 주시는 계시입니다. 성경 전체는 특별계시며,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적인 이야기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이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에게 직접 주신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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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폴리리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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