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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장례식 설교 모음.

14, 축복된 죽음 (하관-3) (계14:13) f 233.289.474  

고인은 세상의 온갖 모진 풍파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맡은 바 소임을 감당하기 위해 충성된 삶을 실아왔다. 

1, 모든 수고플 그쳤다 

인간은 이 땅에 올 때 수고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죄를 짓고난 이후 인간의 수고에는 고통이 뒤따랐고 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성도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은 언제나 기쁨과 찬송이 있는 곳이다. 

성도는 그곳에서 모든 수고를 다 바치고 주님의 위로를 받을 때

지나간 고통을 꿈에 본듯 다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2, 안식을 한다. 

이 땅에 안식이란 있을 수 없다. 돈이 많아 세상을 즐기며 산다 해도 

마음의 초조와 불안과 고통은 그칠 날이 얼다. 

하지만 성도가 그곳에서 얻게될 안식은 가장 완전한 안식이며, 

영원한 안식이다. 때문에 성도의 현실의 삶은 

영원한 안식의 처소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3, 축복된 삶을 산다. 

성도의 죽음이 귀한 것은 이 죽음의 현장에 많은 화환이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 아니요 조객이 많이 모여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성도가 믿음을 갖고 삶을 살았기 때문이며 주 안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음이야말로 저주가 아닌 복된 죽음이며 

이후 천국에서 새로운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성도의 죽음은 모든 수고를 다마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 감으로 축복인 것이다. 

15.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하관-4) (약 4 : 13-17) 294,531,532  

인간은 변화무쌍한 세상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으토 인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또 어떤 때는 인생이 무엇인가라고 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1, 우리는 죽은 자의 영흔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장례예식의 목적은 죽은 자의 상태를 진척시키기 위해 집행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영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어느 곳에도 엄다. 

우리는 친지들이나 이웃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의 영흔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해야 하지 

그들이 이미 죽은 이후에 기도 한다는 것은 아무런 효능이 없다. 

2, 유족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 

장례식의 중요한 목적은 남아있는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게하기 위함에 있다. 

비록 장례식이 우리 영혼의 상태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자의 죽은 시신을 짐숭과 같이 아무렇게나 매장할 수는 없다. 

장메식 의 또 하나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기 위합에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엄연한 진리를 망각하기 쉽다. 

시간과 감각에 속한 것들에 열중하는 동안 세상 재리에 빼앗겼던 마음을 

영원한 것들로 되돌아 오게 함은 중요한 일이다. 

20. 인간들의 행진 (입관-1) 욥 30 : 23 225.467,532  

욥은 극한적인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랑하는 자녀들과 아내가 떠나갔다. 소유도 모두 떠나 갔고 종들도 떠나갔다. 

절친한 친구들은 그를 위선자 사기꾼으로 몰아 붙였다. 

 

1,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가 죽어 무덤에 묻히는 것은 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위대한 조성자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셨기 때문이다. 

(히9 : 27) 그러므로 인간이 죽어 묻히는 무덤이야 말로 인간 본연의 처소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가장 공평한 장소인 것이다. 

 

2, 죽음은 심각한 것을 깨닫게 힌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고서 자신의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는 기회로 삼는다.

우리는 시간을 영원처림 생각하거나 영원을 시간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가 

죽음을 목격하고서 이를 시정하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이야 말로 우리의 위대한 스숭이요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3,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붙잡도록 고무시킨다. 

임박한 죽음을 의식하는 자는 영생을 사모하기 마련이다. 

그런 자에게 매 순간 순간은 가치있고 보람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죽을때 영혼을 생각하게 하고 영생을 사모하게 하신다.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얻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죽음은 인생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므로 

영생을 사모하여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것이다. 

 

 

21. 영원히 멸한 사망 (발인-1) (사 25 : 8) 290.532,544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죽음위에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본문은 인간 최대의 원수인 사망을 이기시고 숭리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승리 .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와 결탁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무덤 속에 넣은 후 

군병들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가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그리스도를 더 이상 

그 착고에 매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망을 이기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인생들에게까지 사망에서 부활을 맛보게 하셨다. 

 

2, 사람의 공포를 물리친 승리 . 

사망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그의 영과 혼과 감정에까지 스며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공포의 도가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을 향해 담대히,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3, 면류관으로 말미암은 승리 .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림으로 

그 숭리를 온전하게 확증시킬 수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숭리로 사탄을 멸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땅위에 살고 있지만 이미 승리한 자로서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 아래서 믿음으로 길를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촬로 사망을 멸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었으딜로 사망을 두려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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